보도자료
금마일기 등 고문헌 번역으로 고도익산 연구 지평 확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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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번역연구소2022-03-25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
익산시(시장 정헌율)와 원광대학교 한문번역연구소(소장 이의강)는 조선 후기 고도 익산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낼 수 있는 금마일기와 유금마성기, 금마별가를 번역하여 ‘익산문헌자료총서 3’으로 발간하였다.
금마일기는 조선후기 익산 군수를 지낸 정규혁이 군수 재임시 기록한 14개월간의 일기이며, 유금마성기는 조선 선비 강후진이 1738년 가을, 기준성 등 익산 금마의 고적을 답사하고 남긴 기록이다. 금마별가는 석북 신광수의 시집으로서, 남태보 군수를 떠나보내며 애달파하는 익산군민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읊은 시 32수가 실려 있다. 이번에 번역된 금마일기(金馬日記)는 1896년 3월 부임한 익산군수 정규혁이 군수로서 겪었던 다양한 업무 처리와 일상사 등에 대하여 그 이듬해 4월 말까지 기록한 일기이다. 특히 부임한 첫 해의 일기는 수령으로서 해결해야 할 각종 현안문제들, 즉 세금 징수, 아전 관리, 각종 의견 수렴 등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세금 징수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이 곳곳에 보이는데, 조선시대 수령들이 세금을 걷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세금 징수가 얼마나 힘든 업무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뿐 아니라 수령을 도와서 군정을 처리하던 면임과 존동, 통수, 검독, 주비, 풍헌 등의 직책은 19세기 말 행정의 일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한편 유금마성기(遊金馬城記)는 태평산인 강후진이 1738년(조선 영조 14) 가을 익산군 금마 일대를 답사하고 남긴 일지이다. 그는 고조선과 기자조선, 마한과 고려의 옛 도성에 관한 문헌자료를 정리하고, 실제 답사한 기행문 <와유록>을 저술하였는데, 유금마성기는 그중 일부이다. 답사기에 의하면 강후진은 익산 금마를 마한의 시조 무강왕 기준이 세운 마한의 중심도읍지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기준성과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쌍릉 답사는 기준왕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이외에도 유금마성기에는 “밭 가운데 칠층석탑이 있는데, 병풍처럼 다듬은 돌을 포개어 쌓은 ‘동방최고의 탑’으로서, 석탑 위로 올라가 보니 서너 명의 농부가 그 위에 누워있었다”고 미륵사지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300여년 전 고도 익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금마별가(金馬別歌)는 1760년 가을, 당대 최고의 시인 석북 신광수가 지은 32수의 연작 한시이다. 익산군수 남태보와 인연이 깊던 신광수는 5년 동안의 군수 임기를 마치고 떠나갈 때 익산군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붙잡으려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민들의 심정을 대신하여 시로 담아냈다. 특히 별가의 서문에는 “악부(樂府)에 전해지는 정신을 담고 있다”고 시를 지은 의도를 내비치고 있어서 이 시가 단순히 군수의 칭송만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비판과 애민의식, 우국충정 등의 정서를 잘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이번의 총서 발간은 2019년의 금마지, 2020년의 여산용안함열읍지에 이어 세 번째이다. 익산시와 한문번역연구소는 지난 10월 초, 그동안의 고문헌자료 번역사업 성과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향후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고문헌학술포럼을 개최한 바 있다.
익산시는 향후 지속적인 익산문헌자료 발굴과 번역서 발간 작업에 힘을 쏟는 한편, 그동안의 성과를 익산역사문화가치 확산을 위한 스토리텔링 개발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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